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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버들숲의 산간학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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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춘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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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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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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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 버들숲의 이야기 (중,고 산간헉교)

무더위가 한창인 7월 마지막주간 산간학교 물품을 실은 수도원 벤츠 트럭은 본당을 출발하여 기세 좋게 충북 영동군 심천면 버들 숲의 입구인 도로가에 수많은 짐을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버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물이 많아 차가 들어 갈수가 없었다. 선발대 인원이 나를 비롯하여 몇 사람(정시영: 시몬, 배점리(방지가 등 선벌대 요원)만 남아 걸어서 버들 숲으로 들어갔다. 미리 보아둔 장소로 가니 그기는 벌써 대구 교구 비산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여러 곳을 보다가 제일 위 지점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저 많은 짐을 어떻게 이곳으로 옮길 것인지 방법이 없었다.

날씨는 찌는 듯 덥고 막막하였다. 도로가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보고 있는데 연세 많으신 동네 어른분이 말을 걸어 왔다. 옳거니 하며 가져간 동동주(배점리씨가 만들어 가져감)를 한잔 대접하고 물건을 옮길 방법을 묻자 냇물이 많아서 이제까지 숲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늘 처음으로 수박 따러 경운기 들이 들어간다고 하며 들어가는 경운기에 물건을 싣고 옮겨 주기로 하여 처음 경운기에 짐을 싣고 숲으로 가고 나머지 물건을 전부 옮기게 되었다. 밤늦게 까지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가지고간 동동주는 바닥이 났다. 물건을 싣고 가는 경운기 주인과 일하는 사람(선발대) 동네 사람 모두가 함께 다 마셔 버렸다.

아침을 먹고 정시영( 포니 픽업 운전)과 함께 심천역으로 가서 본당 신부님(서상우:요한)과 수녀님 학생들을 맞이하여 버들 숲으로 와서 산간학교 1일차 프로그램을 진행 하였다.

산간학교 2일차 프로그램중 가족들에게 편지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어 학생들이 쓴 편지를 가지고 우체국으로 가기위해 냇물을 건너 편지를 보내고 다시 캠프장에 갈려고 물에 들어갔는데 건너편에서 이종만 교사가 물이 불어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하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정태영과 이종만이 건너오려고 오다가 건너지 못하고 되돌아옴. (되돌아 오는것을 서울에서 온 침례교회 간부가 보고 물을 건너다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남)

심천면 사무소에 가서 숲 안의 상황을 설명 하고 핸드 마이크 1대를 빌려서 둑 위로 가니 건너편에서도 신부님(서상우:요한)과 수녀님 (정 한식 : 세레나) 나와 핸드 마이크로 소통을 하였으며 그때 숲 안의 사정을 시간을 정하여 서로 나누기 시작함. 냇물은 엄청나게 불어나서 숲은 고립이 되었음.

반바지에 티 샤츠 차림의 두 남자가 심천시내를 돌아다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돈이 없어 먹을 수 없었으며 여관신세를 져야 했다. 외상 밥을 먹고 외상 잠을 자며 하루를 지내자 이틀날 성모회에서 아이들 방문을 왔지만 둑 위에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때 약간의 돈과 동동주를 가져와 저녁에 동동주를 먹고 잠을 잤다. 그동안 물은 계속 불어나 숲 사정은 무척 나빠졌다. 본당에 전화를 해서 숲속의 사정을 이야기 하였으며 본당신부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유사시 미군부대의 헬기를 이용 할 수 있도록 교섭하라는 지시였다.

3일차 아침 둑 위에 가서 보니 서울에서 어떤 부인이 와서 숲 속의 교회 관계자와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가지고 있던 핸드 마이크를 주자 어제 꼭 집으로 와야 하는 사람이 오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보니 그 사람은 어제 집으로 갔다고 하였다. (우리가 물을 건너려고 할 때 그 사람은 우리 보다 먼저 건너오다가 실종 된 것으로 추측 )

숲속에는 2개의 성당 (비산성당. 왜관성당) 외 몇 개의 단체 등 약 700명이 고립된 상태 였다. 많은 사람들이 둑 위에 모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벌써 철수해야 할 인원이 얼마인지 어떤 상황인지 파악되지 않고 행정 당국의 지원도 없고 우리만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물은 불어나지 않고 줄어들고 있었다. 군수와 서장이 현장에 왔지만 모두 속수무책이며 우리가 미군 부대와 헬기 교섭이야기를 듣고 헬기가 출동하면 바로 알려 달라는 소리만 하였다. (본당에서는 사목회의가 소집되어 미군측과 협의를 하였다. 헬기를 동원하기에는 엄청난 경비가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텐트를 친 자리는 기장 높은 자리라 염려가 없었다.

둑 위에는 심천 면민들과 숲속의 관계자들이 모여 있어 안의 사정을 걱정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숲속에 물건을 보낼 수 있을까 의논하기 시작 하였다. 물이 많이 줄었지만 2-3일은 있어야 겨우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낮 숲속 수박밭에 리어커가 등장하여 수박을 따기 시작하였고 마을 수박밭 주인들은 흥분하기 시작 하였다.

동네의 청년 한명이 로프를 메고 건너가기로 결정되었다. 라면 1상자 옮기는데 3만원을 주기로 하였다. 청년을 물을 건너 숲속과 로프 설치가 되었다. 그때 라면등 생필품이 전달되었다. 둑위l의 사람들과 숲속의 사람들이 서로 당기고 해서 물건을 옮겼다.

4일차 날이 밝았다. 본당에서 사목위원님들이 방문 하였다. (장영옥, 곽종선 등) 사목위원들은 강을 건너기로 결정하고 물에 들어섰다. 물살은 엄청나게 세었다(발밑의 돌이 빠져 나감) 엄청 힘들게 강을 건너니 학생들은 배구를 하며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모두 방문한 신자들을 환영 하였다. 그날 동네 사람들이 수박 밭으로 가서 여러 곳의 사람들을 만나 수박 값 변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신부님은 그날 들어온 사람에게 수박을 구입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 학생들도 수박을 따먹음) 5일째 다른 팀들이 빠져 나가기 시작하자 신부님도 철수를 결정하였다. 철수가 결정되자 선생님과 학생들은 철수를 준비하고 모두 물가로 나갔다. 선생님들이 한 줄로 서서 아이들을 건너 보냈다. 많은 이들이 물건을 떠내려 보냄 ( 내 앞의 아이가 물속에 살아져 깜짝 놀라 아이를 건져냄( 이종수로 기억됨) 모두 물을 건너 역으로 향하고 신부님은 지서(현 파출소)에 가서 수박을 따먹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동네 청년이 확인 함. 참 으로 힘든 산간학교 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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