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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19. 어머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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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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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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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2

  중학교 다닐 때 어느 날 어머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이담에 커서 남의 집 머슴이나 하면 딱 맞겠다.” 저의 별난 식습관 때문에 하도 답답하신 나머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저의 식습관은 어려서부터 별났습니다. 신김치를 좋아했고 윤기 나는 흰쌀밥이나 찹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더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따끈따끈한 밥을 주면 찬밥을 뒤져 먹고 누룽지를 더 선호했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식빵은 껍데기만 골라 먹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도 거뜬히 소화해 내곤 했습니다. 이러니 어머님 마음이 어떠했겠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또 당시 비싸서 귀했던 음식이나 특식 같은 것은 왠지 제 입맛에 맞지 않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사람들이 좋다고 선호하던 것일수록 저는 더욱 싫어했습니다. 


  이런 별난 식습관 때문에 저는 수도원에서도 그랬고 어딜 가나 먹는 것 때문에 별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경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 몫은 남들이 전혀 탐내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특식이 나오면 저는 식탁에서 그야말로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모두 제가 자기 식탁에 오기를 바랐으니까요.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개 버릇 남 못준다’고 근본은 여전합니다.  


  1995년 사제수품 날 저는 어머님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축하식 때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내용을 소개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님의 예언대로 저는 이제 하느님 집에 평생 머슴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하느님이고 여러분은 제 상전들이니 제가 평생 머슴살이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 저를 돌아보곤 합니다. 어머님 예언대로 머슴은 되었는데 머슴 노릇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성찰하면 늘 부끄러울 뿐입니다. 올해로 머슴살이 31년째건만 머슴이 상전이 되려 하지는 않았는지, 은근히 상전 자리를 탐내지는 않았는지 솔직히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22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때의 예언을 떠올려 봅니다. “너는 이담에 커서 남의 집 머슴이나 하면 딱 맞겠다.” 이런 예언을 해주신 어머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머슴살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다시 여러분의 기도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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