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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20. 불효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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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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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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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92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부터 저희 집에서는 아침 등교 시간 때마다 이상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어머님과 저와의 실랑이였습니다. 어느 어머님이나 다 그렇지만 저희 어머님도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유달랐던 분이었습니다. 제가 막내였기에 더 그러셨을 것입니다. 학교에 가려고 인사하면 어머님은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제게 용돈을 쥐여주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필요 없다고 점잖게 말씀드립니다. 어머님은 그래도 모르니 비상금으로 일단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서서히 목소리가 올라가며 괜찮다고 사양합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돈을 내팽개치고 어머님은 다시 쥐여주시고 이런 실랑이가 매일 아침 일례 행사로 몇 차례 계속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양보하고 어느 날은 어머님이 포기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시작된 것은 어느 날 제가 부모님이 저희를 위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서부터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고생해서 어렵게 번 돈을 그냥 쉽게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저는 자라면서도 몸에 거의 돈을 지니고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꼭 필요한 돈만을 지니고 다니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감히 저에게 무얼 사달라고 졸라대는 사람이 없었고, 저는 그야말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구두쇠는 아닙니다. 


  이런 습관이 커서도 이어졌고 다른 영역에까지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해서도 집에 휴가를 갈 때마다 어머님은 제가 입은 옷에 트집을 잡으시고 그렇게 거지같이 하고 다닌다고 힐책하시며 “수도자가 아무리 검소한 것도 좋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고 하시며 은근히 새 옷을 사러 가자고 저를 꼬드기곤 하셨습니다. 이제 완전히 습관이 된 제가 그 요구에 응할 리 만무합니다. 수차례 실랑이 끝에 때론 타협하고 때론 어머님이 포기하시고 해서 입는 것에서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이제 먹는 것에 대해서 또 마음을 쓰십니다. 같은 싸움이 반복되고 휴가 마칠 때면 저는 수도원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서 집에서 빨리 도망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작전을 바꾸자! 이것도 어머님의 마음 표현인데 내게 필요 없다고 해도 일단은 받고서 모르게 처분하면 서로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지혜가 번뜩였습니다. 그 후론 무엇을 주시거나 하시면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받고 후에 처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돈은 절대 사양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조금 더 철이 들었을 때 어느 날 제가 얼마나 철이 없었던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내 안에만 파묻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만 하고 어머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수행도 검소함도 가난도 좋지만 그것은 모두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영적 이기심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가 베풀려고 하는 외적 사물에만 집중했지 정착 그 사물을 통해 표현되는 마음을 보고 그것을 감싸 안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의 아주 초기 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좁은 마음 공간에는 남이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이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것은 분명 스승 예수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심자임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 시선은 자신 안으로만 향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칫 독선과 아집에 빠질 수 있고 사물을 보는 시야가 그만큼 좁게 될 수 있습니다. 신앙에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수행에 정진하면 할수록 그만큼 우리 관심과 시야는 내 밖의 대상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제가 이런 깨달음을 얻고 이제부터는 어머님의 호의를 거절하지 말자고 다짐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어머님은 오랜 지병이 악화하여 더는 제게 무엇을 해주고 싶으셔도 해주실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머님은 이제 천국에서 저의 마음을 보시고 대견해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철이 들었으니!” 이상은 한 철없던 불효자의 고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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