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자료실

왜관성당 영성관련 게시물과 자료들을 공유합니다.

영성자료실

단상5. 나와의 싸움

profile_image
허무
|
2026.02.15 09:48
|
조회 213

   언젠가 어떤 지인에게 서신을 통해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참으로 우리의 거짓 자아를 죽이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랬더니 답신에 다음과 같은 물음과 권고를 주셔서 혼자서 한참을 웃고 다시 답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질문)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죽이는 수행을 하다가 자기를 잃게 되면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가?” 


답변) 자기가 완전히 죽고 소멸하면 또 다른 ‘내’가 부활하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죽여야 하는 ‘나’는 온갖 죄와 이기심, 탐욕, 교만, 허영심 등으로 변질된 ‘거짓 자아’일 뿐입니다. 이 녀석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 안에 있는 ‘참된 자아’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적여정은 바로 이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늘 ‘나’가 있기에 좋은 것 싫은 것, 맘에 드는 것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가 완전히 소멸한다면 어디에 있든, 누구와 함께하든, 무슨 일을 하든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으리라 봅니다. 



권고) “도를 너무 닦다 보면 중생들과 소통이 안 될 수 있으니 적당히, 슬슬 닦으시라.”


답변) 그럴 염려는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흔히 중생들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도사를 저는 짝퉁으로 여깁니다. 진정 도를 닦아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면 중생들이 바로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나 엘리트들은 그분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반면 무지렁이 백성들은 쉽게 그분 말씀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백성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가르치셨습니다. 어설프게 닦으면 자기도 제대로 모르는 피상적이고 관념적 언어들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요. 하지만 제대로 닦으면 늘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꿰뚫기 때문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평범한 언어를 구사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