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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5. 사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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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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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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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2

  사막의 사전적 의미는 불모의 모래벌판을 뜻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버려진 땅, 황량한 땅입니다. 은수자를 뜻하는 라틴어 헤레미타heremita는 바로 사막, 광야를 뜻하는 그리스어 에레모스eremos에서 나온 말입니다. 세속을 등지고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이란 뜻에서 이런 말이 붙은 것입니다. 


   4세기 초 많은 열심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사막으로 들어가 오로지 한 가지 필요한 일, 곧 하느님 찾는 일에 투신했습니다. 왜 꼭 사막으로 들어가야만 했는가? 그곳에서만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사막은 악령들이 차지하고 있던 악령들의 본거지로 여겨졌습니다. 악령들도 사막을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도시에서 활개 치다가 그리스도교가 종교자유를 얻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그리스도인에게 쫓겨 울부짖으며 사막으로 가서 그곳에 똬리를 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도시는 그리스도인이 점령하게 되었고 악령들은 대신 버려진 황량한 땅 사막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도시를 차지한 그리스도인은 점차 승승장구하여 교만해지고 복음의 가르침에서 자꾸 멀어져서 갔고 지하에 있을 때의 열정과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 중 열심한 이들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시를 떠나 하나둘 사막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또 다른 박해자 악령들과 직접 맞닥뜨려 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원수와의 싸움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의탁과 그분 자비에 대한 희망, 영웅적 용기와 신앙 그리고 그분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사막에서 그들은 원수와의 이런 치열한 투쟁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증거하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수도승생활 선조들이자 수도 영성의 시조들입니다.


   사막은 또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했던 땅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광야 시기를 보내면서 많은 시련과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했고 시련과 고통을 거치면서 그들 스스로 정화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야, 사막은 궁극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순례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막은 아직 진행 중인 우리 영적 순례 여정을 상기시켜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천상 예루살렘, 곧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 여정 중에 있습니다. 곧 사막과 광야에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막은 단지 지리적, 장소적 사막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외적 사막이 외적 고요와 침묵을 보장해 주고 잡다한 관심사와 세상 걱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주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서도 세속 한복판처럼 살 수 있고 세속 한복판에서도 참된 사막을 찾고 사막의 고독과 침묵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막이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참된 고독과 침묵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막은 순례의 땅, 버려진 땅, 그렇지만 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 하느님을 만나는 곳, 그분 현존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 고통과 영광, 죽음과 부활이 동시에 체험되는 곳입니다. 이렇듯 사막은 파스카 신비를 몸소 살고 몸소 체험하는 그리스도인 실존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체적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막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파스카 신비를 살고 체험하는 바로 그곳이 사막입니다. 그래서 참된 사막은 내적 사막, 마음의 사막인 것입니다. 이 사막은 바로 우리 일상 안에서, 우리 내면에서 매일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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