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6. 기억하십시오.
오늘은 설 연휴이지만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이는 오늘 저녁미사 때 우리가 재를 받으면서 듣게 될 말입니다. ‘흙으로 돌아간다.’ 참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인간존재의 기원을 상기시켜줌과 동시에 인생의 허무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말입니다.
미국 사막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어느 날 제게 이 말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었습니다. 언뜻 흙처럼 아직 한참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따르기 위해, 그분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교만에 의한 불순종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졌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겸손을 통한 순종의 길로 나아가도록 초대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매번 방해하는 훼방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짓 자아’라고도 하는 ‘에고’(Ego)입니다. 겸손과 순종의 탈 속에조차 늘 이 에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걸려 넘어지고 스스로 속게 됩니다.
우리 신앙 여정은 말 그대로 ‘나’와의 싸움입니다. 참된 적은 바로 우리 안에 깊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 녀석을 죽여야 다른 나, 곧 ‘참된 자아’가 살아날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중요합니다. 모든 껍데기와 허위를 벗어버리고 참된 나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당신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겸손을 무기로 에고와의 싸움에서 건승하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