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9. 겸손
겸손은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정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겸손을 덕의 절정 혹은 덕의 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에게도 겸손은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겸손(humility)이란 말은 ‘흙’, 또는 ‘먼지’를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겸손’이란 말은 흙에서 난 인간존재의 기원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가 흙에서 왔음을 늘 기억할 때, 허영심이나 교만의 유혹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사막의 한 원로가 “겸손이 무엇입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겸손은 위대한 일이며 하느님의 일이네. 겸손의 길은 자신을 죄인으로 믿고 모두에게 종속시키는 것이지.” 그러자 제자가 다시 “모두에게 종속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라고 묻자 원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에 신경 쓰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의 잘못과 죄에 주의를 기울이고 부단히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라네.”
겸손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늘 죄인으로 생각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한 복음의 세리와 같은 자세입니다. 바리사이는 하느님 앞에 짐짓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냈지만, 세리는 자신의 죄에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고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그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기도는 세리의 기도였습니다.
7세기 시리아의 이사악은 말합니다. “겸손은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하느님의 엄위하심과 우리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겸손해 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쉽게 남을 판단하고 단죄할 수 없게 합니다.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교만이 생겨나고, 교만에서 남에 대한 단죄가 나옵니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은 일차적으로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받아들임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불완전한 인간이자 죄인으로 인식하고 하느님 자비에 희망을 두는 것입니다. 따라서 겸손은 비굴함이나 굴종, 또는 타성에 젖은 자기 비하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이다.”(마태 23,12) 우리 모두 겸손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올라가는 복된 이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