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 변화와 만남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우리는 체험으로 이러한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고 현재 상태로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일 변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죽음만이 변화를 멈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화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육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습니다. 문제는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는 데 있습니다. 긍정적 변화를 이른바 진보 또는 성장이라 하고 부정적 변화를 후퇴 혹은 퇴보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자 잃은 것도 있을 것이고 얻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득보다 실이 더 많다면 부정적으로 변화한 것이고, 실보다 득이 더 크다면 긍정적으로 변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불림 받았을 때와 현재의 내 모습을 비교해 볼 때 각자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초기의 순수와 열정이 아직 남아 있는지, 인간적, 정서적 결점은 개선되었는지 아니면 더 자라나 버렸는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삶은 과연 이타적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바뀌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간직하고 키워가야 할 것은 초발심, 즉 순수와 열정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올바른 방향으로 설 수 없고 또 끝까지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초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끝까지 견지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참으로 존경할만 합니다. 또한 정직성, 성실성, 단순성, 소박함, 검소함 등도 우리가 간직하고 키워가야 할 것들입니다.
아름답고 좋은 것은 결코 한때 간직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말끔히 반납해 버리는 것들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옹고집이나 타성이 우리가 반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버려야 할 것 중 이중성이 있습니다. 이는 말과 행동이 다르고, 여기서 한 말과 저기서 한 말이 다르고, 이 사람에게 한 말과 저 사람에게 한 말이 다른 것입니다. 예컨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말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는 상냥하고 굽실거리지만, 힘없는 소위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마구 짓밟고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우리 안에도 있을 수 있는 이런 이중성은 공동체를, 신앙생활을 파괴하는 독소가 됩니다. 또 자리와 감투에 대한 집착, 시기와 질투심, 나태와 안일, 교만 등은 우리가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심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인간,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것은 취하고 키워가되 나쁜 것은 버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변화에 있어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남은 한 인간의 삶을 엄청나게 좌우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 ‘그 부모에 그 자녀’란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에게서 훌륭한 제자가 나오고 훌륭한 부모 밑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만남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관권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생은 자기가 가꾸어 가는 것이고 죽어서 각자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정작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입니다. 그분을 제대로 만날 때 우리는 인격적, 영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베르나르도, 너는 왜 이곳에 왔느냐?’ 내가 지금 왜 여기 있는지를 매번 새롭게 인식함은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를 나태와 안일에서 깨어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사부 성 베네딕도의 다음 말씀을 매번 깊이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 무엇을 위해서 왔소?”(『성규』 60,2) 즉, 나는 이곳에서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가 이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 우리는 절대 퇴보하지 않고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하느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이 물음은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하나의 중요한 화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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